2015년부터 2024년까지 이어진 작가 이곤의 길 위의 여정
바랜다는 가능성이 내재된 건물의 색은 단 한가지로 규정되지 않는다.
빛이 바랜다는 말은 빛깔이 바랜다는 뜻으로, 물체가 빛을 받을 때 생긴 파장의 색이 점점 흐려져간다는 의미이다.
즉, 건물의 색은 하나로 아우를 수 없는 파장이 가진 모호한 색의 ‘범위’로 우리 눈에 인식된다.
그래서 우리는 벽돌을 빨갛지 않고 불그스름하며, 기와가 까맣지 않고 검다고 말한다.
이 넓게 퍼진 색의 모호함은 나에게 고요함으로 다가온다.
어딘가에 속하는 듯 속하지 않고 일렁임과 같은 잔잔함, 고요함을 준다.
이렇게 건물들은 저마다 모호해진 색이 되어 우리 눈을 통과하고 기억으로 돌아온다.
곁에 가까이 있지 않더라도, 혹은 급기야 허물어지더라도.
우리 기억 속에서 그 어렴풋하고 고요한 존재가 흔적처럼 남아 지속된다.
작가노트 중 2019.2